을지로 노포를 찾는다면 산수갑산의 이름을 기억해둘 만하다. 서울 중구 인현동, 을지로20길에 자리한 이 집은 순대국밥과 대창순대로 오랫동안 손님을 맞아왔다. 국밥 한 그릇을 먹는 식사부터 모둠 한 접시를 나누는 술자리까지, 같은 음식을 즐기는 방식도 여럿이다.
산수갑산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은 대창순대다. 도톰한 대창에 소를 채워 썬 단면부터 눈길을 끈다. 겉의 쫄깃한 식감과 안쪽의 차진 찹쌀, 선지의 고소한 맛이 어우러진다. 순대모둠을 주문하면 여기에 머릿고기와 여러 내장 부위가 더해진다. 식당의 역사를 알기 전이라도, 이 접시만으로 어떤 음식을 해온 집인지 짐작할 수 있다.
대창의 쫄깃함과 촉촉한 순대소
대창순대의 매력은 소를 감싼 대창에도 있다. 씹는 맛이 뚜렷한 대창과 촉촉한 속을 함께 즐길 수 있어서다. 국물에 담긴 순대와는 달리, 접시에 따로 나온 순대에서는 두 부분의 질감 차이가 더욱 또렷하다.

그 식감을 만드는 과정은 2018년 SBS 《생활의 달인》에서도 소개됐다. 찹쌀을 맹물에 바로 불리는 대신 마늘종과 마늘, 다시마를 넣은 물을 사용했다. 그렇게 불린 찹쌀로 소를 만들고, 순대는 사골육수에서 두 차례 삶았다. 찹쌀을 불리는 단계부터 삶아내는 과정까지 손이 가는 음식이다. 당시 방송이 주목한 것도 이렇게 만든 순대의 촉촉하고 부드러운 맛이었다.
순대에는 소금이나 새우젓을 조금 곁들이면 된다. 먼저 한 점을 맛본 뒤 간을 더하는 것도 좋다. 대창의 풍미를 좋아한다면 순댓국뿐 아니라 순대를 따로 내는 모둠도 반가운 선택이다.
한 접시에 담기는 손질의 차이
산수갑산의 순대모둠은 순대만 가득 담아내는 메뉴가 아니다. 머릿고기와 간, 오소리감투 등 돼지의 여러 부위를 함께 내놓는다. 순대를 중심에 두고 고기와 내장을 번갈아 먹을 수 있어, 한 가지 음식만 계속 먹을 때와는 다른 재미가 있다.
이 접시 뒤에는 삶기 전후의 손질이 있다. 2016년 《주간동아》가 취재한 최준우 대표의 주방에서는 고기를 다듬으며 불필요한 지방과 식감이 좋지 않은 부분을 걷어냈다. 머릿고기는 삶은 뒤에도 살을 발라내고 결에 맞춰 두께를 조절해 썰었다. 대창순대의 소에는 찹쌀과 두부, 고기, 선지, 채소를 넣었고 우거지도 사용했다.
당시 대창순대는 하루 두 차례 만들었고, 고기도 영업하는 동안 나누어 손질하고 삶았다. 완성된 접시만 보면 푸짐한 양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주방의 일은 재료를 다듬고 익힌 뒤 먹기 좋게 써는 데까지 이어졌다. 오래된 단골이 기대하는 음식에는 이런 세세한 작업도 들어 있다.

국밥 한 그릇을 권하는 사이
산수갑산이 손님들의 입소문으로 알려진 과정은 오래된 인터뷰에서도 엿볼 수 있다. 2015년 《한국경제》의 식사 인터뷰에서 당시 GE헬스케어코리아를 이끌던 시아 무사비 대표는 이 식당을 만남의 장소로 골랐다. 한국에 와서 순댓국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동네 주민의 추천으로 산수갑산을 알았다고 했다. 그날 주문한 음식도 국밥과 순대모둠이었다.
인터뷰에는 국밥을 앞에 두고 술잔을 나누는 손님들 사이에 무사비 대표가 앉아 있는 모습이 담겼다. 동네 사람이 권한 식당을 찾아갔다가, 이번에는 자신이 다른 사람을 초대한 것이다. 한 사람이 마음에 든 식당을 기억해두고 다음 사람에게 권하는 일. 산수갑산의 단골 이야기는 거창한 수식보다 이런 식사 한 번으로 더 가깝게 다가온다.
국밥으로 먹어도, 모둠으로 나눠도
산수갑산은 혼자 국밥 한 그릇을 먹으러 가도 좋고, 여럿이 모둠을 가운데 놓고 둘러앉아도 좋은 식당이다. 한 끼 식사라면 순대국밥을, 대창순대와 여러 부위를 차례로 맛보고 싶다면 순대모둠을 고를 수 있다. 내장을 즐기는 사람끼리 찾는 자리라면 모둠의 다양한 구성이 특히 반갑다.
을지로 순대 맛집을 고를 때 산수갑산을 떠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차진 속을 감싼 두툼한 대창과 부위마다 식감이 다른 고기. 순대모둠은 이 집이 오랫동안 해온 음식을 한 접시에서 맛보는 방법이다.
산수갑산은 서울 중구 을지로20길 24에 있다. 을지로3가역과 을지로4가역 사이에서 접근할 수 있으며, 한국관광공사는 을지로4가역 10번 출구에서 도보 약 5분 거리로 안내한다. 산수갑산 상세 정보와 을지로4가역 맛집에서 주변 식당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자료와 영상
- SBS 《생활의 달인》 625회, 2018.05.28. 찹쌀 준비와 순대 조리 과정.
- 주간동아, 「30년 전통의 맛과 정성, 골목대장 되다」, 2016.11.21. 최준우 대표와 고기·순대 손질 취재.
- 한국경제, 시아 무사비 대표 식사 인터뷰, 2015.06.18. 개업 연도, 단골 손님의 방문 경위와 음식.
- 한국관광공사 산수갑산 안내, 대표 음식과 위치.
- 김사원세끼 「서울에서 가장 살발한 산」, 2023.09.11. 산수갑산을 소개하는 원 제작자 영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