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을 들어 올리면 얇게 썬 소고기 아래로 소면이 따라 나온다. 고기의 결이 드러나는 단면, 송송 썬 대파, 국물 표면에 뜬 기름까지 한눈에 보인다. 옆에는 배추김치와 큼직한 무김치가 놓인다. 영동설렁탕의 식탁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특별한 장식보다 이 익숙한 음식들의 조합이다.
신사역 가까이 자리한 이 집의 메뉴는 설렁탕과 수육이다. 그러나 설렁탕 몇 그릇을 시킬지 정하는 것으로 주문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기름을 뺄지 더할지, 고기는 그대로 먹을지 머릿고기를 섞을지에 따라 같은 설렁탕도 달라진다. 음식을 받은 뒤에는 파와 소금, 김치 국물로 취향을 더한다. 영동설렁탕을 오래 찾은 사람에게는 메뉴 이름 못지않게 익숙한 주문 방식이다.
성시경이 기억하는 새벽의 영동설렁탕
성시경에게 영동설렁탕은 촬영을 위해 새로 발견한 식당이 아니었다. 2022년 공개한 ‘먹을텐데’에서 그는 스무 살 무렵부터 술자리 뒤에 찾았던 기억을 꺼냈다. 강남에 녹음실이 많던 시절, 녹음을 마치고 술을 마신 뒤 들르던 곳이었다. 새벽 세 시 반쯤 오기도 했고, 옆자리에서 이적을 마주친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의 회상에는 밤늦게 식사하는 택시 기사들도 등장한다. 누군가에게는 일을 마친 뒤의 한 끼,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음 일을 앞두고 먹는 식사였다. 녹음실과 술자리의 기억이 이 설렁탕집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늦은 시간에도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수육을 먹으며 부위별 차이를 짚고, 설렁탕에는 밥을 조금씩 덜어 넣었다. 기름과 조미료를 빼는 주문도 소개했다. 오래 다닌 식당을 이야기할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무엇을 시켜 어떻게 먹는지에 관한 설명이다. 영동설렁탕을 이해하는 데에도 유명인의 방문 사실만큼 이런 식사 방식이 중요하다.

고기를 공급하던 사람이 설렁탕집을 열기까지
영동설렁탕의 시작은 마장동 고기 시장과 연결된다. 양상순 창업주는 축산물 도소매업을 하며 을지로의 설렁탕집 문화옥에 고기를 공급했다. 식당을 드나들며 설렁탕 만드는 일을 접했고, 문화옥의 도움을 받아 1970년대 영동설렁탕을 열었다.
원재료를 다루던 경험이 국물과 수육을 내는 식당으로 이어진 셈이다. 설렁탕 한 그릇 안에서는 고기의 맛이 국물에 어우러지고, 수육 접시에서는 부위마다 다른 결이 드러난다. 두 메뉴를 함께 살펴보면 이 집이 다루는 소고기의 풍미를 보다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가업은 다음 세대로 이어졌다. 2016년 취재 당시에는 양상순 창업주의 아들 김용호 대표가 식당을 맡고 있었다. 고기 장사에서 시작해 아들에게 이어진 식당의 시간은, 술자리 뒤 이곳을 찾던 손님들의 기억과 나란히 쌓였다.
같은 설렁탕, 조금씩 다른 주문
영동설렁탕은 뽀얗고 불투명한 국물보다 비교적 맑은 국물과 분명한 소고기 향으로 기억되는 집이다. 색이 옅다고 맛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다. 표면에 떠 있는 기름도 이 집의 풍미를 이루는 한 부분이다. 그 고소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과 조금 덜 기름지게 먹고 싶은 사람의 주문이 여기서 갈린다.
담백한 쪽을 원하면 ‘기름 빼기’, 기름의 고소함을 더 즐기고 싶으면 ‘기름 추가’를 요청한다. 조미료를 따로 더하지 않는 ‘미원 빼기’도 있다. 기름과 조미료는 각각의 선택이므로 한꺼번에 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름은 두고 미원만 빼거나, 기름만 줄이는 식으로 원하는 바를 주문할 때 말하면 된다.
고기는 또 다른 취향이다. 살코기의 결을 씹는 맛이 좋다면 기본 고명을 즐기면 되고, 머릿고기의 식감을 좋아한다면 머릿고기를 섞거나 머릿고기만 넣는 주문을 문의할 수 있다. 국물의 기름을 빼는 것과 고기의 부위를 고르는 것은 다른 선택이다. ‘기름 빼기’를 곧 ‘살코기만 넣은 탕’으로 생각하지 않는 편이 정확하다.

소면을 먹지 않는다면 주문할 때 빼 달라고 요청하는 방법도 있다. 반대로 국수를 좋아한다면 국물 속 소면부터 건져 먹고 밥을 곁들이면 된다. 밥을 한꺼번에 말지 조금씩 덜어 먹을지, 파를 얼마나 넣을지도 취향에 따른다. 주문 전에 정하는 기름·조미료·고기 구성과 식탁에서 조절하는 간을 나눠 생각하면 처음 방문해도 복잡하지 않다.
처음 방문이라면 ‘기름 빼고, 머릿고기 섞어서 가능한가요?’처럼 원하는 조합을 짧게 말하면 된다. 고기의 식감을 바꾸고 싶은지, 국물을 덜 기름지게 먹고 싶은지부터 정하면 자기 입맛에 맞는 주문도 쉬워진다.
김치와 깍두기, 그리고 작은 주전자
국물의 기름과 고기 구성을 골랐다면 이번에는 김치 차례다. 식탁의 김치통에는 배추김치가 잎째 담겨 있고, 다른 통에는 큼직하게 썬 무김치가 들어 있다. 앞접시에 필요한 만큼 덜어 먹는 방식이다. 고기와 소면을 먹는 사이 배추김치를 곁들이거나, 밥 한 숟갈에 무김치 한 점을 얹으면 국물만 연달아 먹을 때와는 식감이 달라진다.
김치의 익은 정도도 취향이 갈리는 부분이다. 잘 익은 김치의 산미를 좋아하는 사람과 덜 익은 배추의 씹는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같은 고깃국에도 다른 김치를 곁들인다. 영동설렁탕에서 익은 김치와 덜 익은 김치를 골라 먹어 온 방식 역시 그 취향의 연장선이다. 김치는 설렁탕 옆을 채우는 반찬이면서, 기름과 고기 맛에 변화를 주는 음식이다.

김치 이야기를 할 때 작은 주전자도 빼놓을 수 없다. 물처럼 보이는 주전자에 담긴 것은 김치 국물이다. 김치통을 기울여 국물을 덜어내지 않아도, 주전자에서 원하는 만큼 따라 먹을 수 있다.
꼭 설렁탕에 부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김치 국물을 따로 따라 마시면 고깃국의 맛은 그대로 두고 두 국물을 번갈아 즐길 수 있다. 탕에 더해 먹는 쪽을 좋아한다면 조금씩 부어 양을 맞추면 된다. 맑은 국물에 붉은빛이 돌고 김치 국물의 산미가 더해진다. 처음에는 그대로 먹다가 중간에 김치 국물을 넣어 한 그릇의 맛을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누군가는 기름을 남긴 국물에 파만 더하고, 누군가는 김치 국물을 섞어 먹는다. 별도로 따라 놓은 김치 국물을 곁들이는 사람도 있다. 무엇이 정석인지 가르기보다 각자 좋아하는 맛을 고를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집의 주문법은 뚝배기가 나온 뒤에도 이어진다.
수육 한 접시에서 만나는 고기의 결
설렁탕 속 고기를 먹다 보면 수육에도 눈길이 간다. 얇게 썬 고기를 포개 놓은 접시에는 살코기의 결이 선명한 부분과 지방이 어우러진 부분이 함께 보인다. 국물에 잠겨 있을 때보다 고기의 모양과 두께, 부위의 차이가 잘 드러난다.
영동설렁탕 수육은 양지와 머릿고기, 우설처럼 성격이 다른 부위를 맛보는 음식이다. 살이 부드럽게 풀리는 느낌과 탄력 있게 씹히는 부분을 번갈아 즐길 수 있다. 고기 자체를 먹고, 김치를 곁들이고, 따뜻한 국물을 한 숟갈 떠먹는 사이 한 접시 안에서도 먹는 조합이 달라진다.

혼자라면 설렁탕 한 그릇으로, 일행이 있다면 수육 한 접시를 나누며 식사하기 좋다. 같은 식탁에 앉아도 누구는 소면을 먼저 먹고, 누구는 밥을 말며, 다른 사람은 김치 국물부터 따른다. 메뉴는 두 가지지만 식탁의 모습은 손님마다 다르다.
술자리 뒤 신사역에서 해장할 국물을 찾는다면 영동설렁탕은 소고기 풍미가 짙은 한 그릇을 고르는 선택이다. 기름의 양부터 고기 구성, 김치를 곁들이는 방법까지 자기 입맛에 맞출 수 있다는 점이 이 집을 다시 찾을 이유가 된다.
찾아가기와 주문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101안길 24. 신사역 5번 출구에서 약 260m 떨어져 있다. 설렁탕은 15,000원, 수육은 52,000원이다. 24시간 영업으로 안내하지만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는 쉬며, 휴게시간 전 주문은 오후 2시 30분에 마감한다.
자료와 영상
- 사진: 라미 직접 제공. 방문 사진의 장면만 사용했으며 정확한 방문일이나 당시의 주문 옵션을 사진만으로 추정하지 않았다.
- 성시경 공식 채널, ‘먹을텐데 · 신사 영동설렁탕’, 2022.06.14. 5분 36초~6분 28초 기름·미원 빼기와 기름 추가, 7분 12초 이후 녹음실·이적에 관한 회상. 원본 재생과 공개 자막 대조.
- 조선일보, ‘슴슴한 평냉, 담백한 설렁탕, 쫄깃한 족발… 맛과 추억의 대물림’, 2016.10.26. 양상순 창업주·문화옥·당시 김용호 대표의 가업 승계.
- 김순경 음식 칼럼, 처음처럼 공식 블로그의 영동설렁탕 취재, 2012.11.20. 과거 국물과 손님층 기록.
- Eater, Yeongdong Seolleongtang. 국물·소면·수육의 특징.
- 핫식신, ‘신사동 술집 BEST 5’ 중 영동설렁탕, 2026.05.20. 신사역 업장 주소와 기름·미원·머릿고기 선택을 대조했다. 같은 발행사의 과거 동일 문구 재게재를 여러 독립 근거로 세지 않았다.
- 대일이야, 영동설렁탕 방문 기록, 2023.10.27. 김치 국물 주전자·양념 배치·기본 고명. 옹잉의 잠원동 영동설렁탕 방문 기록, 2022.09.02. 익은 김치·덜 익은 김치·깍두기 제공 방식. 김치 국물을 따로 따라 먹는 방식은 사용자가 전달한 방문 맥락을 반영했다.
- 다이닝코드 신사역 영동설렁탕 방문자 기록. 소면 빼기·온도·사리와 육수 추가는 방문자 안내이며 매장의 공식 상시 보장 조건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다.
- 네이버 플레이스, 메뉴. 주소·가격·휴게시간은 2026.10.05 확인. 맞춤 주문과 김치 제공은 방문 당시 준비 상황에 따라 확인이 필요하다. ‘살코기만’이라는 별도 주문의 현행 제공 조건은 확인하지 못해 가능 옵션으로 단정하지 않았다. 개업 연도는 자료에 1975·1976년이 함께 있어 1970년대로 표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