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제스트의 바 뒤편에는 술병이 빼곡하게 늘어선 진열장이 없다. 절제된 공간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텐더와 그들이 만드는 한 잔이다. 익숙한 주류 브랜드 대신 재료와 만드는 사람에게 관심을 두게 하는 풍경이다. 제스트 공식 소개
제스트는 2025년 월드 50 베스트 바 16위, 2026년 아시아 50 베스트 바 2위에 이름을 올렸다. 국제적인 평가를 받는 이 바의 칵테일은 한국에서 자란 과일과 허브, 국내 생산자의 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세계 여러 도시에서 익숙하게 마시는 칵테일을 청담동에서 다시 주문할 이유를, 그 안에 들어가는 재료에서 찾은 셈이다.
네 바텐더가 함께 연 바
제스트를 공동 창업한 김도형 바텐더는 처음부터 술을 직업으로 정했던 사람이 아니다. 공학을 공부하다 진로를 바꿨고, 서울에서 커피를 배우던 중 칵테일 동아리에 들어갔다. 얼음이 든 셰이커 소리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에 매료되면서 바텐더의 길을 택했다. 이후 W호텔의 우 바와 청담 앨리스에서 경력을 쌓았다.
2016년에는 월드클래스 한국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해외 대회에 나서는 일은 수상만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 다른 바텐더들과 교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이를 계기로 언어도 배웠다. 칵테일을 잘 만드는 기술에 더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동료들과 관계를 맺는 경험이 쌓였다. 2024년 아시아 50 베스트 바에서 동료 투표로 선정하는 ‘알토스 바텐더스 바텐더 어워드’를 받은 이력은 그의 성장 과정을 보여준다. 김도형 인물 인터뷰
그가 우성현·박지수·권용진 바텐더와 함께 제스트를 연 것은 2020년 12월이다. 각자의 일터에서 영업을 마친 뒤 모여 자신들의 바에 대한 생각을 나누던 시간이 창업으로 이어졌다. 네 사람은 남의 공간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운영에 담고 싶었다. 공동 창업자 인터뷰
개업 시기는 코로나19로 영업시간이 제한되던 때였다. 밤 9시에 문을 닫아야 하니 저녁부터 장사하는 방식으로는 운영이 어려웠다. 제스트는 오후 2시에 문을 열었다. 지상층에 자리한 바에는 노트북을 가져와 일하며 술을 즐기는 손님도 찾아왔다. 애초에 해보고 싶었던 낮 시간의 바 운영을 예정보다 일찍 시작한 것이다. 제스트가 지향한 편안한 음주 문화는 이런 현실적인 선택 속에서도 구체화됐다. 제스트 창업 이야기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진토닉, Z&T
제스트의 대표적인 칵테일은 ‘Z&T’다. 진과 토닉워터라는 익숙한 조합을 쓰지만, 과일과 허브를 계절에 맞게 고르고 토닉워터도 직접 만든다. 시판 믹서를 사용하면서 생기는 빈 캔을 줄이려는 선택이 한 잔의 구성까지 바꾼 것이다. Z&T 개발 인터뷰
허브는 남양주의 이장욱 농부와 협업해 마련한다. 팀이 농장에 가서 직접 수확하고, 봄에는 스피어민트, 여름에는 레몬버베나, 가을과 겨울에는 타임과 세이지처럼 계절에 맞춰 바꾼다. 같은 이름의 칵테일에도 방문하는 시기의 재료가 반영되는 방식이다. 계절 재료와 생산자 이야기
이런 개발 방식에서 한국적인 칵테일은 낯선 전통 재료를 잔에 넣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익숙한 과일과 허브라도 어디에서, 어느 계절에 구하느냐가 레시피의 출발점이 된다. 진토닉을 처음 마시는 손님은 익숙한 형식으로 접근할 수 있고, 칵테일을 즐겨온 사람은 재료를 바꿔 표현한 차이에 주목할 수 있다.
제주 한라봉을 여러 방식으로 쓰는 이유
이름부터 제주를 담은 ‘제주 가리발디’에는 지역의 감귤류와 구좌 당근이 들어간다. 과즙을 짜고 난 뒤에도 재료의 쓰임은 남는다. 한라봉 껍질은 하우스 진을 다시 증류하는 데 사용하고, 과육은 코디얼이나 발효 재료로 활용한다. 즙·껍질·과육을 구분해 서로 다른 용도를 찾는 것이다. 50 Best의 제주 가리발디 소개
‘제스트’라는 이름에는 ‘제로 웨이스트’의 뜻이 담겨 있다. 칵테일을 만든 뒤 분리배출을 잘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재료를 들여올 때부터 어느 부분을 어떻게 쓸지 고민한다. 어떤 재료가 남는지 함께 살펴보는 과정이 새 메뉴를 개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제스트의 재료 활용 방식
제스트가 2024년 월드 50 베스트 바에서 ‘케텔 원 지속 가능한 바 어워드’를 받은 배경에도 이런 실천이 있다. 손님에게는 한 잔의 칵테일이지만, 바 안에서는 원료 준비와 제조, 남은 재료의 활용까지 이어지는 일이다. 공식 수상 이력
식혜와 빵도 칵테일의 재료가 된다
제스트가 선보여온 메뉴를 살펴보면 재료를 다루는 범위가 넓다. ‘식혜 밀크 펀치’는 쌀 소주와 한국의 스파이스드 럼, 호박 식혜와 유청을 활용한 칵테일이다. 식혜라는 친숙한 음료를 술과 결합해 새로운 형태로 소개한다. ‘시티 비스 니스’에는 진과 시트러스, 라벤더와 지역에서 얻은 꿀을 활용했다. 전통 음료를 재해석하는 방법과 도심에서 생산한 재료를 사용하는 방법이 서로 다른 메뉴로 이어진다. 메뉴 개발 사례
작은 크루아상을 올린 ‘라스트 피스’에는 바게트 끝부분을 활용한 럼과 파인애플 껍질이 쓰인다. 빵과 과일의 남는 부분을 다른 방식으로 가공해 레시피에 포함하고, 국산 밀 생지로 만든 미니 크루아상까지 더했다. 장식만 보고 지나치기 쉬운 한 잔에도 재료를 선택한 과정이 담겨 있다. 라스트 피스의 구성
메뉴들의 공통점은 익숙한 맛의 재료를 칵테일의 문법으로 다시 다룬다는 데 있다. 식혜, 과일, 빵은 설명을 듣기 전부터 손님이 어떤 맛인지 떠올릴 수 있는 재료다. 그 친숙함이 만드는 사람의 실험과 마시는 사람의 경험 사이를 이어준다. 제스트를 소개할 때 특정 술의 이름만큼이나 재료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다.

2022년 7월에는 라모스 진 피즈를 주문하고 일행과 칵테일 세 잔을 함께 든 사진을 남겼다. 그해 12월에는 제스트의 2주년을 맞아 다시 찾았다.
설명과 응대까지 한 잔의 일부
칵테일에 담긴 과정이 복잡할수록 손님에게 전달하는 설명은 명료해야 한다. 김도형 바텐더는 베버리진 인터뷰에서 메뉴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문안을 정리하고, 테스트를 통과한 직원이 접객을 맡도록 한다고 밝혔다. 좋은 재료를 썼다는 말만 반복하기보다, 그 재료가 왜 이 칵테일에 들어갔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팀을 운영하는 방식도 같은 방향이다. 오너 바텐더들이 외부 활동을 할 때는 직원들이 바에 설 기회를 갖고, 별도의 랩은 메뉴 개발과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마련했다. 네 창업자가 모든 잔을 직접 만드는 데 머무르지 않고, 다른 바텐더들도 제스트의 기준을 익혀 손님을 맞을 수 있도록 하는 구조다. 서비스와 팀 운영 인터뷰
공식 세계 순위 소개에서도 제스트의 지역 생산자 협업과 서울의 도시 양봉, 국내 소규모 양조장·증류소의 술이 강조된다. 유명한 해외 주류를 활용하면서도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와 생산자를 함께 연결한다는 점이 이 바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2025 월드 50 베스트 바의 제스트 소개
청담동에서 제스트를 찾는 이유는 그래서 순위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어떤 재료를 고르고, 어떻게 다루며, 누가 손님에게 건네는지까지 살펴볼 수 있는 바다. 한국의 제철 재료와 술이 칵테일로 어떻게 표현되는지 궁금하다면, 제스트의 메뉴와 바텐더의 설명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다.
압구정로데오에서 제스트를 찾는다면
예약 페이지에 올라 있는 대표 메뉴는 Z&T와 Urban Bees다. 병아리콩 후무스에 마리네이드 채소와 바게트를 곁들인 샐러드, 차가운 들기름 파스타도 함께 주문할 수 있다. 주류 주문이 필수인 바이며, 현재 공개된 메뉴 가격은 다음과 같다.
- Z&T · 27,000원
- Urban Bees · 27,000원
- 후무스 샐러드 · 27,000원
- 차가운 들기름 파스타 · 27,000원
캐치테이블 예약은 20:00까지 · 이후 당일 현장·전화 웨이팅 · 9인 이상 매장 문의. 예약 시각에서 10분이 지난 뒤 연락이 닿지 않으면 다른 손님에게 좌석이 돌아갈 수 있어, 늦어질 때는 미리 연락하는 편이 좋다.
월–금 18:30–02:00 · 토–일 15:00–02:00 · 주방 라스트오더 00:00 · 바 라스트오더 01:20. 낮의 바를 경험하고 싶다면 오후 3시에 문을 여는 주말을 고를 수 있다. 청담 우정 앞 발렛 부스 이용 · 17:00부터 발렛 무료 안내 · 이전 시간 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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